수선화
후토리 후유엔 → 나나사토 히나오
화원에서 들려오는 지저귐이 부쩍 늘었다.
작년 봄이 지나는 시점부터 츠바하나의 구석에는 작은 우물이 생겼다. 작은 새들이 잠시 발을 담그고 날개를 씻어내고 갈 수 있는 도자기 그릇 몇 개가 덤불 사이 바닥에 놓였다는 말이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얕은 물이 고인 우물에는 늘 동백꽃잎 한 둘이 둥둥 떠다녔다.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는 작은 잎사귀가, 그도 저물고 가을이 오면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겨울엔 서리가 내리지 않도록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우물이었다. 근처에는 늘 두 개의 발자국이 있었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기다란.
1년이 지난 지금은 하나의 발자국만이 남았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댄 후토리는 책상 위에 얹은 다리를 까딱이며 밖으로 손을 뻗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커다란 통에 담긴 젤리와 사탕 몇 개가 손가락 사이에 걸려 나왔다. 바스락거리며 사탕을 까 입안에 넣으면 달달한 리치 향이 훅 퍼져 나온다. 책상 아래 놓인 휴지통 속에도 젤리의 껍질이 가득했다. 그 안으로 하나를 더 던져넣던 손이 허공에서 멈추고, 고개가 꺾이면 이어 침음이 흘렀다.
"너무 많이 먹나···?"
꽃집이란 공간에 처음 들어선 탓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만 십여 분. 보다 못한 직원의 도움에 후토리는 겨우 품 안에 꽃다발을 들었다. 꽃꽂이를 위해 필요한 꽃이라 설명하니 이런저런 추천을 듣긴 했으나, 역시 마음이 가는 곳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나사토라면 어떤 꽃을 가져가더라도 크게 혼내지 않을 것 같아 후토리는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한 종류는 수선화를 골랐다. 언젠가 자신을 닮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어쩐지 시선이 향했다고 해야 하나. 두 번째로는 하얀색의 폼폼을 골라 담았다. 마지막으로 골라 담은 것은 안개꽃이었다. 하얗고 노란 것을 품에 가득 안고 있노라니 어쩐지 만족스런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타인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인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꽃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나를 닮았고, 당신이 떠오르는 꽃. 자신의 외모에 따뜻한 색은 없었으나 안개꽃만은 제 분위기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글자 그대로 안개를 닮은 꽃잎들이.
당신에게 다도를 배우고 꽃꽂이를 배우는 시간은 썩 즐거웠다. 으레 처음 배우는 것이 그렇듯 여러 번 실수하고 잊었으나 당신은 끈기 있는 스승이었다. 종종 가윗날에 손을 베이거나 자신이 들고 온 찻잔을 깨 먹는 날이면 다치지 않을까 걱정을 해주었고, 쏟아버린 차나 붉은 피가 튄 꽃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후토리는, 그런 것보다는 네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좋았다. 늘 그랬듯.
당신은 언제나 그랬다. 나나사토 히나오는 항상 같았다.
변화는 긍정적이다. 후토리 자신이 변하고 바뀌었듯이. 성장이란 감기처럼 갑작스레 찾아오고, 한 번 앓고 나면 무엇이 바뀌었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된다. 이미 자라버린 모두가 말하지 않나,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당신은 늘 어른이었다. 아이 같은 면모가 있었으나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 세상에 정의와 도덕이 존재한다는 믿음. 결코 꺼지지 않는 불씨가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인간과 인간이 만나 신뢰를 가진다면 누구든 바뀔 수 있다는 생각. 나나사토 히나오를 이루는 근간은 사랑이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사랑.
후토리는 그런 당신을 존경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사람의 뿌리를 이루는 무언가에 대해 질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으니.
그는 당신의 애정이 좋았다. 따스한 햇볕 같은 당신의 말이나 시선이 좋았다. 해는 어떤 계절에도 떠오르고, 손으로 쥘 수는 없으나 눈가를 덮으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계절이 두 번을 지나도록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떠 있었다. 지지 않는 태양처럼.
수선화와 하얀 꽃들로 장식된 화분은 초보자치고는 제법 봐줄 만한 모양새였다. 양 손가락 여기저기에 익숙한 캐릭터 밴드가 잔뜩 붙게 되긴 했지만.
후토리는 졸업식이 끝난 뒤, 모든 인사를 나누고 교문을 빠져나가는 당신을 붙잡았다. 품 안에 처음 만든 화분을 안기며 또 한 번 울음을 터트렸던 것 같다. 잠기고 쉰 목소리는 주변의 소음에 가려 잘 들리지도 않았다. 뭐라고 말했더라.
"선배님께 꼭 드리고 싶었어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졸업··· 축하드려요."
라고, 말했던가.
리뉴얼 전, 리뉴얼 후 합쳐서 총 4개의 타래에서 나눴던 대화를 묶었습니다...
나나사토와는 늘 약속을 했고, 대부분이 배움에 대한 내용이어서 참 좋았어요.
꽃꽂이 화분은 처음부터 완성해서 졸업식날 선물로 드려야지 싶었다네요
대화는 엔딩날까지 이어갔지만 메타적으로 처음 대화를 시작한 날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고 가정했어요.
하... 나나사토야 넌 정말 태양같은 남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