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소원
후토리 후유엔 → 요코카와 하네 / 텍관로그
반 배정이 발표되기 전날, 환기를 위해 평소처럼 자신의 방문 창문을 열던 와중이었다. 창문 옆 튀어나와 있던 못에 늘 하고 다니던 팔찌 중 하나가 걸리고, 순식간에 풀어져 아래로 툭 추락했다. 꼬아진 색상을 보아하니 '요코카와와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소원 팔찌였다. 후유엔은 하필 그날 팔찌가 끊어진 것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음날 반 배정을 받은 뒤엔 눈이 안경알만큼 커져서는 요코카와에게 끊어진 팔찌를 보여주었다.
후유엔은 생각보다 미신을 믿었다. 타로카드의 점술이나 사랑니가 나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는 말, 오늘의 오하아사나 사주팔자 같은 것들 말이다. 종교나 신 따위의 거창한 것은 믿지 않았으나, 믿든 믿지 않든 크게 영향이 없는 작은 주술이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통계학을 믿었다. 반은 재미였고 반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타로로 운세를 점치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게 거짓일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그런 의미해서 끊어진 팔찌는 제법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혹시라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서랍 안쪽에 작은 상자까지 마련해 넣어두었다. 이제 손목에는 하나의 팔찌만 남아있다. '글을 좀 더 빨리 읽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라고 소원을 빈.
새 학기가 시작되고 요코카와는 오컬트 부에 (드디어) 들어 왔다. 후유엔을 꼬아내어 입부시켰던 부장은 요코카와의 등장에 환호성을 질렀다. 가장 아끼는 방석이라며 상당히 복잡한 무늬가 그려진 것을 선물하고도 모자라 집에 있는 오컬트 서적까지 가져와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요코카와의 오컬트 사랑과 게시판에 붙는 마녀의 주술들이 제법 널리 퍼진 모양이었다. 하긴, 요코카와는 어째서 오컬트를 그리 좋아하는데도 입부하지 않느냐고 후유엔을 닦달하던 사람이니 당연했다. 요코카와의 말로는, 본인이 원작자는 아니라고 했지만.
요코카와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방 오컬트 부 사람들과 친해졌다. 저절로 후유엔이 오컬트 부를 방문하는 횟수도 늘었다. 그 즐겁고 작은 변화는 흘러가는 2학년의 시간이 나쁘게 만은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손목의 팔찌 하나가 줄었다고 어쩐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 탓인지, 정말 손목이 비었기 때문인지,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기 때문인지는 영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돌아 다시 봄.
꽃들이 피어나고 진다. 눈 사이로 싹이 돋자 동백이 저물 준비를 했다. 너와 나는 같은 시간을 함께 흘러가는데도 어쩐지 이별이 다가오는 기분이 들어 서러웠다. 내년에도 같은 반이면 좋겠다. 하는 작은 말에 요코카와는 밝게 웃었다. 그럼~ 후유. 올해도 소원 팔찌를 다시 만들어 볼까? 하며 손목을 보이는 그녀에게 후유엔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면 다시 당신의 생일이다. 작년 이맘때 당신이 해주었던 말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나를 좋아하는 만큼 자신의 생일도 좋아하게 됐다는 그 따뜻한 말. 그맘때, 자신의 애정과 친절에 가치를 두지 못했던 후유엔에게 그 말은 딱 봄 같은 것이었다.
이번 당신의 선물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꽤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티 세트를 모으는 시간은 끝났고, 요즘의 당신은 춤과 부채를 좋아했다. 그리고 아마 여름이 지날 즘이면 그것마저도 곧 사그라들겠지. 당신은 무언가를 오래 사랑하고 애정하는 것 자체를 갈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후유엔은 단발적인 애정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당신이 학교를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때에 알게 되지 않을까. 요코카와는, 만나는 수많은 사람의 취미와 애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딱 한 번이라도 불타오르듯 무언가를 사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분야를 떠나더라도 기저에 남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 순간엔 늘 진심이었기 때문에.
후유엔또한 그런 당신을 보고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뭇조각이나 메탈로 만들 수 있는 건축물의 3D 퍼즐이나 재즈 음악이 담긴 LP판 같은 것들. 수집은 제법 즐거웠다. 이것 또한 네가 가르쳐준 것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겠지. 그래서, 제가 느낀 것을 돌려주고 싶은데. 언제나 그렇듯 선물을 고르는 것은 어려워 시간은 금방 흘러가고 만다. 후유엔은 달력을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올해의 선물은 특별한 것으로 주고 싶었다. 네가 지금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이후에 사랑하게 될 것으로.
* 요코카와! 돌고 돌아 다시 생일 축하한단다. 아직 며칠 남았지만...
같은 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같은 반이 되어서 기뻤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소원팔찌는 끊어야지요 ^ㅁ^)9
멋대로 요코카와와 또 소원팔찌를 만드는 걸로 날조를 해버렸는데...
이번에 만들 팔찌의 소원은 비밀로 하지 싶어요. 생일선물은 당일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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