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너를 위한 단독 공연
후토리 후유엔 → 치노네 쥬이 / 텍관로그
펜과 연필을 쥐는 자리에만 엷게 생겨 있던 굳은살은 어느덧 손끝까지 퍼져나갔다. 쓰는 만큼 닳고, 눈에 보이는구나. 후유엔은 짧은 감상과 함께 이젠 익숙해진 피아노 건반을 쓸어보았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에게 악보 보는 법을 배우고, 짧게 학원을 등록하거나 코칭을 받는 식으로 짬짬이 피아노를 배운 지 일 년이 가까이 됐다. 여전히 악보를 보는 것도 느리고 연주는 버벅거리지만, 반복해 연습한 몇 곡만은 조금씩 외워가고 있었다.
집안에 피아노를 들이는 건 무리였기에 학교에서 음악실에 들르는 일이 많았다. 건축 공부를 하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아버지인데, 피아노까지 들였다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테니까. 덕분에 음악실을 자주 이용하는 다른 학생들과 안면을 조금 트기도 했다.
지난여름, 쥬이는 고교 밴드 축제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가볍게 나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도 한사코 따라나선 후유엔은 1열에 앉지는 못하고 3줄 정도 뒤에서 열렬히―집에 갈 때는 목이 전부 쉬었다―쥬이를 응원했다. 대상을 받는 순간에는 주책맞게 눈물까지 보였고, 한동안 그의 SNS 대부분이 쥬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늘 그랬듯 후유엔은 쥬이의 노래를 좋아했다. 몇 년간 응원한 친구의 대상이니 한참 기분이 들떠있을 만도 했다.
계속 노래를 하지 않을 거란 점에선 조금 의외였으나, 쥬이의 선택이었기에 그마저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내심 대학에 가서도 취미로나마 노래를 계속해주었으면 하는 희망은 있었다. 그녀의 노래는 맑았다. 쥬이가 지닌 에너지와 열정, 활기찬 정열과 밝은 웃음은 상대를 기쁘게 만들었다. 쥬이가 무대 위에 있을 때면 관객석은 언제나 여름이었고, 노래의 가사들은 늘 감동을 주었다. 그런 사람이 노래는 취미로 묻어두겠다니 아쉬울수밖에.
고개를 들자 열린 창문이 보였다. 이제 봄이 다가오는 겨울의 바람이 불어 들자 커튼이 천천히 휘날렸다. 2학년의 끝이다. 이젠 3학년으로 올라갈 테고, 지난 1년간 변화한 많은 것들이 또 새롭게 변하겠지.
준비가 된 것은 아니었으나 더 늦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완벽한 준비 같은 건 할 수 있을 리가. 자신은 어딘지 엉성하고 덤벙거리는 게 아이덴티티가 아니던가. 그러니 당신도 이해해주리라고, 후유엔은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후유쨩! 불렀어? 음악실 같은 데서 무슨 일이야~?"
"응, 그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준비가 너무 오래 걸렸지만···."
후유엔은 차가워진 손끝을 천천히 매만졌다. 긴장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3년, 아니 4년을 함께 한 친구 앞에서도 마찬가지고. 한달음에 곁으로 다가온 쥬이는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며 반짝이는 얼굴로 물었다. 물건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여기저기 둘러보기도 했다.
"일단··· 앉아볼래?"
"응~ 여기 앉을게! 쥬이 주는 선물이야?"
그 천진난만한 웃음이 귀여워 옅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피아노가 잘 보이는 근처 자리에 앉은 쥬이는 연신 카나리아처럼 조잘거렸다. 후유엔은 새삼스럽게, 이 오래된 친구가 머리 모양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쥬이를 쥬이로 만드는 것들은 무엇하나 바뀐 게 없었지만.
"조금 창피한데···. 있지, 한 번 즘··· 쥬이가 노래할 때 연주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니까, 반주···를."
늘.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넌지시 떠올렸던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곡을 연주하고 싶다든가, 당신과 합을 맞추며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든가 하는 소망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를 위해 한 번 즘 연주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쥬이의 노래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듣는 순간마다 위로를 주는 것은 분명했기에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말을 멈추고 잠시 피아노를 바라보던 후유엔은 곧 그 위로 손을 올렸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연주가 낫겠지 싶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한번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쥬이는 어느새 놀란 듯 동그랗게 떴던 눈을 휘어 웃으며 턱을 괴고 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 한 명의 관객인데도 이렇게 심장이 뛰는데, 너는 어떻게 그 큰 무대 위에서 환하게 빛을 낼 수 있을까. 역시 날개를 달 수 있는 사람이란 천성이 정해주는 것이 아닐까. 후유엔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랜 시간 연습해온, 한 사람을 위한 연주를 시작했다.
* 텍관을 짤 때부터 쓰고 싶었던 로그...입니다.
지난 1년한 후토리는 피아노를 배웠어요. 이유는 (이하 로그 내용)
쥬이는 상큼하고 활기찬 노래를 부를 것 같아, 피아노를 할까 기타를 할까 하다가 결국 피아노로 정했습니다.
후토리가 연주한 음악은 상단의 BGM인데, 쥬이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로 골랐어요.
쥬이의...반응이 예상가지 않아 로그가 딱 연주하는 부분까지만 쓰여 있습니다. 모쪼록 즐겁게 읽으셨길 바라요...(꾸벅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