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고야
후토리 후유엔 → 니사카 호노신 / 텍관로그
"후토리. 왔어?"
"아,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야. 기차 시간까지 조금 남았으니까 괜찮아. 그럼 갈까?"
후토리는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늦은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으나 지각은 지각이었다. 니사카가 한참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고, 기차에 오르기 전에 간단히 간식을 사자며 주의를 돌린 후에서야 그의 사과 행렬이 멈췄다. 처음으로 떠나보는 여행이라 지나치게 설렌 것이 문제였다. 방학이라도 규칙적인 생활이 그리 깨지지 않던 후토리였으나, 전날 밤엔 새벽 5시 가까이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자니 기차 밖의 풍경이 허공을 떠다니는데 어쩌겠는가. 여행 짐을 싸면서는 너무 오버하지 않기 위해 쥬이에게 조언을 구하기까지 했다.
늘 꿈에 그리던 기차여행이다. 본가에 내려갈 때 이외에는 혼자 타 본 적도, 친구와 타 본 적도 없는. 삭막한 분위기의 가족들이 아닌 가까운 사이의 사람과 함께 가는 첫 여행.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후토리는 잠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리고 울리는 알람을 2번 정도 개무시했다.
살면서 택시기사를 재촉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손수 달려온 것은 아니기에 머리나 옷은 정갈했으나 심장만은 마라톤을 한 것처럼 뛰었다. 저 멀리 약속장소에 서 있는 니사카를 보고는 답지 않게 큰 소리로 "선배님!"을 부르며 걸음을 빨리하기도 했고. 그런 모습을 본 니사카도 적잖이 놀랐는지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금방 웃음을 보였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니사카의 모습은 말쑥하니 정석적인 미남이었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한 번씩 그를 바라보기도 했다.
점심시간을 앞둔 늦은 오전. 나란히 신칸센에 앉아 팩에 든 음료를 하나 까먹고 있자니 천천히 기차가 출발한다. 후토리는 냉큼 창문에 쳐진 가림막을 열었다. 니사카의 배려로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그의 눈에서는 드물게 빛이 났다. 점점 멀어지는 역의 모습,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들, 빠르게 흘러가는 늘 보는 도시의 풍경들. 환상적이게도 날씨는 맑았고, 앞으로 2박 3일간 비 소식은 없었다.
"벚꽃이 피는 계절에 와서 다행이다. 괜찮다면 조금 걸을까?"
"이 정도는 괜찮으니까요···. 걷기 힘들어지면 말씀드릴게요."
그의 말대로 나고야성의 봄은 아름다웠다. 벚꽃이 만발해 이리저리 꽃잎이 휘날리고, 바닥엔 분홍색 카펫이 깔린 모습이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이었다. 나무 아래에 서 있는 니사카는 본래 그곳에 서 있는 게 일인 사람인 양 잘 어울렸다. 애인이 아닌 자신과 이런 곳에 여행을 오게 한 것이 못내 미안하기는 했으나, 그도 제법 즐거워 보여 걱정은 묻어두기로 했다.
날이 좋으니 걸음이 가벼웠다. 목적지는 특별히 없는 산책이었으나 그래서 더 좋았다. 걸어가는 동안 떨어지는 꽃잎에 후토리의 머리 위로 주문한 적 없는 모자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골목 안쪽으로 기웃거리는 두 마리 고양이를 발견한 니사카가 갑작스레 산책 루트를 바꾸기도 했다. 후토리의 가방 속에는 자신에게 필요 없는 알레르기약이 일주일 치는 들어있었다.
벤치에 앉아 짧게 나고야성의 스케치를 하고, 그 곁에 서 있는 니사카를 그려 넣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물 크로키를 연습한 것이 그리 헛되진 않았는지 제법 봐줄 만한 그림이 나왔다. 그림은 한 페이지를 찢어 니사카에게 선물했다. 그는 장난스레 사인을 해달라 했으나, 후토리는 긴 고민 끝에 그림 오른쪽 하단에 도장을 찍어주는 걸로 대신했다.
숙소는 제법 괜찮은 료칸으로 잡았다. 숙소를 포함한 경비를 한 사람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건 양쪽 모두 원하지 않았기에 내린 절충안으로, 그리 고급스러운 곳은 아니었으나 온천의 물은 따뜻하고 향기로웠다. 혼욕이었다면 후토리가 뒤집어졌을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성별은 구분되어 있었다.
편한 유카타를 입고 다다미방에 앉아 있노라니 졸음이 몰려왔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평소보다 많은 기력을 쓴 탓도 있고, 좀 전에 마신 따뜻한 우유가 노곤한 기분을 불러일으킨 탓도 있었다. 나란히 엎드린 채 다음 날의 일정을 체크해보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후토리의 안경은 상당히 처참한 상태로 발견됐다.
방학에, 주말도 껴있는 탓에 레고랜드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눈에 익숙한 교복도 아닌 터라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꽤나 애를 써야만 했는데, 일찍이 일어난 덕분에 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후토리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구 앞에 선 레고 모양 인형탈 알바와 사진을 찍었다. 인형탈보다는 입구의 레고처럼 쌓아 올린 건축물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기왕 찍는 김에 이것저것 찍으면 좋지 않은가. 니사카는 "후토리가 찍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며 그저 훈훈하게 웃기만 했다.
여느 놀이공원처럼 입구 바로 안쪽에는 기념품 가게가 여러 개 줄지어 서 있었다. 레고 모양의 도시락통, 얼음 트레이, 레고 모자와 방석, 가방···. 후토리와 니사카는 나란히 레고 무늬가 그려진 담요를 하나씩 구입했다. 친구들에게 선물할 것들은 나가는 길에 사기로 하고, 본인들의 가방에 달 레고 키링을 추가로 구입하고 나자 눈에 들어오는 선반이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빠져나올 때 두 사람은 머리 위에 하얀 꽃―레고처럼 사각으로 예쁘게 만들어진―을 얹은 채였다. 함께 하면 창피함도 50%라고 하지 않았나. 평소라면 절대 이런 짓을 못 할 후토리였지만 놀이공원의 분위기란 특별했다. 모두가 그러니 자신도 할 수 있었고, 니사카의 머리 위 꽃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물론, 회전컵을 타는 사이 잘 피어있던 꽃은 어디론가 날아가 귀가할 시점엔 다시 민둥한 머리가 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후토리는 피곤했던 것인지 곤히 잠든 니사카를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풀이 지나고 도시가, 다시 푸른 광경이 나올 즘엔 가방 안을 뒤적여 작은 디카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 담긴 사진들에서 자신은 줄곧 웃고 있었다. 비록 흐리거나 옅은 미소인지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웃는 척'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그의 눈엔 분명히 즐거워 보였다.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중에선 웃으며 찍은 사진이 없기에 어쩐지 묘한 기분이 된다. 자신의 사진, 니사카와 함께 찍은 사진, 니사카만 찍은 사진, 레고랜드의 건축물이나 정원을 찍은 사진이 한참 넘어갈 즘 후토리에게도 졸음이 몰려왔다. 후토리는 디카의 전원을 끄고 창가의 가림막을 내렸다. 해가 저무는 기차의 불빛도 깜빡, 하며 어두워졌다.
* 대화를 마무리 하지 못해... 경비는 어떻게 되었는지, 니사카가 머리띠를 써줄 지 알 수 없게 되었으나
인생은 선빵이 필승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씌웠습니다. (죄송합니다)
레고랜드에 가본 적이 없어서 대강 레고니까 이런게 있겠지? 하고 날조했습니다.
로그의 시점은 작년 봄방학입니다. 약 11개월 전이네요... 그간 한번즘 더 여행을 다녀왔을 것도 같아요. 아니면 마쯔리라도!
로그에 쓰인 것 이외에 나고야 여행의 추억은 마음껏 날조 부탁드립니다.
니사카 주접이 많은 로그인데 모쪼록... 즐겁게 읽으셨길 바라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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