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

2021. 4. 1. 17:12

후토리 후유엔 → 요코카와 하네

 

 

 유명한 격언이 있다.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고, 인연이 반복되면 운명 혹은 필연이라는. 당신과의 우연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으니 우리는 적어도 인연,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 사이이지 않을까. 후유엔은 종종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너를 발견했겠지. 찰나가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스쳤을 테고.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떻게든 서로의 원 안에 한 걸음을 디뎠을 테다. 너와 나는 닮은 사람이라기엔 너무도 달랐으나, 다른 사람이라기엔 한 사람처럼 어울리는 구석이 있었다. 후유엔은 그것이 기꺼웠다. 개인과 개인은 서로에게 소속될 수 없으나, 우리는 그런 말이 무색하도록 서로의 생각을 읽을 줄 알았기에.

 네게는 사람을 당기는 힘이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밤하늘에 뜬 별을 의지해 걸어 나가는 것처럼.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비록 언젠가의 과거엔 홀로 외로워하고, 걸어가는 현재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해도, 네가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까마귀를 닮은 네가 빛나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손 내민 것은 그 '운명'에 이끌린 기행이었거나, 어쩌면 네 빛을 반사한 나를 알아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거울을 보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다정에 마모되어 깎여나간 표면에서 옅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건 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깨워준 무언가였다.

 그래서인가. 딱 1년 전 이맘때에 비해 최근엔 '웃는 일이 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도 종종 떠올리고는 한다. 너를 좋아하는 만큼 내 생일이 좋아졌다고 했던 말. 네가 기억에 남겨둔 수많은 따뜻한 말 중에서도 그 문장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귓가에 스치고는 했다. 나는 생일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형식적으로 받는 선물은 종종 기뻤고, 이르게 찾아온 사춘기엔 눈물이 날 만큼 서러웠다. 케이크는 늘 달았지만 불붙은 초가 꽂히는 일은 없었다. 그 짧은 단란함을 이루기엔 가족의 모두가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그래서, 고등학교에 진학해 처음으로 사귄 친구에겐 조금 더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타인의 생일을 챙겨본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네겐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것마저도 물이 든 것일지도. '그냥, 마음이 시켜서'라는 말은 네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계기니까.


 선물로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뚜껑이 달린 턴테이블을 준비했다. 네 방 안에 여기저기 놓여 있을 오컬트 용품들과 썩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아 진한 색의 나무를 사용한 제품을 골랐다. 
 함께 준비한 3장의 LP판을 그 위에 얹었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 종종 이어폰을 통해 네게 들려주곤 하던 클래식 음악, 네게 어울릴 것 같은 뉴에이지가 차례로 얹힌다. 보통 선물은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줘야 한다지만, 이전에 결심했듯 이번엔 네가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것'을 선물하기로 한다. 선물을 볼 때마다 지나온 추억과 나를 떠올려 주었으면 해서.
 포장하기 직전 네가 근래 자주 보러 다니던 공연의 표를 2장 함께 넣었다. 그 곁엔 '생일 축하해'라고 짤막하게 쓰인 카드가 한 장. 빛에 비춰야만 새겨진 패턴이 보이는 하얀 포장지로 선물을 감싸고, 청회색의 구불거리는 리본으로 상자를 간단히 묶어 그 위에 네 이름을 썼다.


 그 일련의 과정은 즐거웠다. 네게 선물을 하며 저 역시도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또 한 바퀴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너를 조금 더 이해한다. 너를 좋아하는 만큼, 생일이라는 단어가 부쩍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생일선물을...주고 싶었는데!! 날짜가 휙 뛰어넘어가지 뭐예요. 
마침 주신 로그를 보고 너무너무 글이 쓰고싶어져서... 선물 얘기도 함께 썼습니다.
멘답 달라고 하셨지만!!!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길었어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것 치고는 짧은데 축제이후에 체력이 다 떨어져서 그만...) 
우리 천사 하네... 어쩜 이렇게 천사일수가 사랑한단다... 2학년에도 같은반인걸 보고 좋아서 소리를 질렀어요.
지금 타래는 마무리하고 다른 타래쪽으로 이어주셔도 좋고, 계속 이어가주셔도 좋습니다 (모쪼록모쪼록)

+ 하네가 지난 겨울 후토리에게 어떤 생일선물을 주었을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간에 방에 소중하게 장식되어 있답니다.

+ 하네 성장 로그를 보고는 저도 울었답니다 (그래도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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