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심지

2021. 4. 17. 18:30

후토리 후유엔 & 나나사토 히나오 이능력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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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은 늘 그렇듯 얼어버린 표면 위를 긁는 것과 비슷했으나, 뒷목을 타고 몸 끝으로 퍼져나가는 타인의 기운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딱 나나사토 히나오를 닮은, 단지 인간의 체온이라기엔 제법 강렬한 온기였다. 이 빌어먹을 이능은 주인을 닮는 모양이지. 후토리는 새삼스레 입 밖으로 스며 나오는 냉기를 느끼며 손끝을 당겨 장갑을 벗었다. 이미 얼어가기 시작한 손으로부터 얼음 결정이 후두둑 떨어져나왔다.

 "민간인은 모두 대피했다."
 "진입할까요?"
 "가."

 남은 한쪽의 장갑을 벗어 바닥에 대강 던진 후토리는 숙이고 있던 상체를 들었다. 온기가 몸 안을 녹이고 그 자리에 다시 냉기가 차오른다. 순환되는 열기에 주체할 수 없이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귓가에서 작은 노이즈가 흘러나온다. 살짝 얼어버린 인이어를 툭툭 두드려 고친 후토리는 마지막 숨을 고르며 안경을 고쳐 썼다. 

 "···목표는 테러범의 생포. 서포트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발아래로 엷은 살얼음이 끼기 시작한다. 동시에 미끄러지듯 움직여 손을 뻗어낸다. 건물을 휘감은 화마 안쪽으로 손을 대고, 유리와 벽면을 순식간에 얼려 깨트린다. 칼날처럼 쏟아지는 유리 조각들이 걸음의 궤도를 쫓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불과 얼음이 마주 닿는 자리마다 폭발하듯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후토리는 망설임 없이 계단이 아닌 방향으로 움직였다.
 닫힌 엘리베이터의 틈새로 손바닥을 대고 주먹을 쥔다. 작은 폭발과 함께 어그러진 문을 뜯어내고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내려간 엘리베이터의 천장을 밟고 뛰어올라 위를 올려본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불에 탄 잔해와 열기에 걸치듯 쓴 마스크를 잡아 내리고, 인이어로 들어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신호에 맞춰 찬 숨을 내쉰다. 허공에서 얼어붙은 잔해들을 계단처럼 밟고 몇 층을 오른 뒤 와이어를 움켜 쥐었다.

 "최상층까지 돌파합니다."
 "목표는 옥상에 있다. 긴장 늦추지 마!"
 "네."

 살얼음이 손목을 지나 팔꿈치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이성을 흩트리던 열기가 이젠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신경이 쓰이는 것이라고는 여전히 뒷목 근처를 아른거리는 체온과 온기, 종종 얼어붙는 정신을 깨우는 당신의 목소리 정도뿐이다. 또렷한 당신의 음성이 들릴 때마다 손끝에 자연히 힘이 들어갔다.

 "최상층입니다. ···옥상 진입 전에 화재 진압부터 할게요."
 "도주로 막아놨다. 마음껏 해봐."

 도와줄 테니까. 마지막 말을 끝으로 최상층의 중앙에 서 눈을 감는다. 이미 얼음으로 가득 찬 1층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열기를 느끼며 외투의 지퍼를 내렸다. 바닥으로 외투가 추락하고, 가둬두었던 냉기가 해일처럼 퍼져나간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리 생각한다. 불과 얼음이 부딪히면 불이 유리한 싸움이 아니냐고. 후토리는 그 생각에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한 마디를 덧붙일 뿐이다.

 '하지만··· 한계가 없을 때엔, 다를 지도요···.'
 "저, 여기 있어요···."

 자신의 위치를 알리듯 창밖으로 하나의 얼음 창이 뻗어 나간다. 보랏빛으로 뻗어 나간 창의 끝으로부터 줄기가 갈라지고, 건물의 벽면을 타고 넝쿨처럼 얼음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얼음이 비침과 동시에 발끝으로부터 온기가 느껴진다. 후토리는 검은 시야 안으로 유일한 온기를 쫓았다. 얼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숨결을.

 


*

 


 나나사토는 손끝으로부터 타오르는 냉기를 느꼈다. 분명 바람조차 불지 않는 공간에 있음에도 설산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추위가 몰아쳤다. 각자의 온도를 공유하며 모니터 안을 들여다본다. 건물을 바깥에서 촬영하는  CCTV에는 어느덧 붉은 빛이라고는 사라진 채 그저 하얀 구름에 싸인 것처럼 불투명해진 건물 주변만이 비치고 있다. 마이크를 움켜쥐고 있던 그는 목소리를 낮춘 채 모니터에 고개를 가까이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과 기회를 기다리며.

 "···움직인다. 제압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목소리 대신 들려온 것은 거대한 충돌의 소음과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소리뿐이다. 건물의 최상층으로부터 옥상까지 뚫고 나간 거대한 얼음 기둥 끝은 사람의 손가락처럼 갈라진다. 반항하듯 여기저기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불길에 거대한 손끝이 녹아 갈라진 콘크리트를 적셨다. 위에서 아래로 불길이 번지고, 아래서 위로 물길이 흐른다. 나나사토는 이미 얼어버린 발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턴 분석한다! 지시대로 따라와!"

 


*

 


 후토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폐로부터 쥐어짜듯 내뱉는 숨이 차다. 목 안쪽, 심장 언저리까지 얼어붙는 감각은 늘 익숙하지 않았다. 그 언저리로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당신의 능력 또한 그랬고, 가려진 눈 대신 자신의 발이 되어주는 오더 또한 그랬다. 얼어붙은 호수 위엔 늘 혼자만이 자리했기에 함께 싸운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컨디션은 최상이다.

 "조심하세요···."

 상대가 아닌 자신의 등 뒤의 인물에게 내뱉는 경고의 말. 그로부터 몇 초를 세고 바닥으로 발을 구른다. 쩌적 소리를 내며 보랏빛의 가시가 쇄도했다.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어깨를 타고 목을 지나 뺨 위로 얼음 결정이 맺힌다. 그대로 몇 번을 더 깜빡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간다. 뚫린 천정으로 스미는 햇볕에 서리 낀 눈동자가 반짝였다. 

 허공을 가득 메운 수증기 속에서 가시는 꺾이고 부러진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얼음과 불의 전장은 후토리에게만은 고요했다. 그 어떤 소음도 없이 귓가의 또렷한 목소리만을 이정표 삼아 움직인다. 그곳에 있다는 말을 믿고, 발아래와 등 뒤는 살피지 않은 채. 오직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처럼. 그 소란스런 침묵 안에서 마지막 일격이 뻗어 나갔다. 




 얼어버린 머리카락과 눈동자에 미처 가라앉지 못한 잿가루가 떨어졌다. 쓰러진 상대를 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빛에 반사되어 다채로운 색으로 일렁인다. 몸을 숙인 채 호흡을 고르던 후토리는 헬리콥터의 소음이 들릴 즘에서야 고개를 들었다. 반파되어 이젠 천장이라고는 없는 최상층. 맑은 하늘을 등진 기체 안에, 한바탕 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건물 위에 당신이 서 있다. 거의 고장 나버린 인이어에서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표 생포했습니다."

"목표 생포 확인." 

"복귀하겠습니다···."

"본부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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