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2021. 4. 28. 01:12

To. 카와라사키 유이토

sa7225.tistory.com/124  (PW: 1203) 해당 로그에서 이어집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보면 조금 구겨진 이불자락이 보인다. 이미 깨어나 사라진 당신의 자리를 손으로 더듬어 본다. 아침도 좋지만, 주말에는 좀 더 누워있어도 괜찮을 텐데. 생각과 함께 커튼 사이 스미는 햇볕에 의지해 시계를 찾았다. 오전 9시. 어김없이 나보다 일찍 깨어난 당신은 부엌에서 바쁜 모양이다.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보면.

 "후유엔~ 잘 잤어? 오늘도 내 꿈 꿨고?"
 "···좋은 아침이에요···. 맞춰보실래요?"

 깨어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당신이 문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찡그리듯 웃으며 이불에 고개를 파묻자 당신의 웃음이 들렸다.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다정하다. 언제 일어나셨어요? 좀 더 일찍 깨워도 괜찮았을 텐데···. 말하는 것과는 달리 영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귀신같이 알아챈 당신이 팔을 잡아 힘주어 일으킨다.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늘어지는 하품을 했다. 지난밤의 숙취로 머리 안쪽이 울리는 기분이다. 걷어지는 커튼에 눈이 부셨다.

 비척이며 걸어 부엌에 향하는 동안에도 당신은 끊임없이 제 등을 문지르고 토닥인다. 아직 가을의 초입인데, 그래도 역시 잠에서 깨어난 직후는 으슬으슬하니 춥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깨 위로 올라오는 담요에 웃었다. 종종 당신이 생각을 읽은 듯 행동하는 때가 있다. 당신에게 나 또한 그랬고. 그런 순간이면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정말 내 꿈 꿨어?"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깨를 으쓱이고 식탁 앞에 앉는다. 진탕 취해도 필름이 끊기는 타입은 아닌지라 지난 밤의 대화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신도 그것을 안다. 평소라면 아주 놀렸을 텐데, 오늘은 잠잠한 것이 의아했다.

 "꿈에는 보고 싶은 사람이 나온다잖아."
 "네, 종종 나오세요. 생각보다 자주요?"
 "꿈의 주인을 보고 싶은 사람이 오는 거란 말도 있더라~."
 "그럼 형 꿈에도 제가 종종 나오겠네요···."

 이젠 자연스러워진 대답 끝에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당신도 기분이 좋은 것인지 예쁘게 웃는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상을 앞에 두고 잠시 손을 모았다. 잘 먹겠습니다―. 


 


 



 당신의 정성이 들어간 아침 덕에 머리를 채우던 두통은 제법 가라앉았다. 여전히 몸이 늘어지기는 했지만, 애초에 오늘은 약속을 잡지 않았으니 하루 종일 누워 있을 심산이었다. 배가 부르니 노곤하게 잠이 쏟아지기도 했고. 침대보다는 거실에서 햇볕을 받으며 뒹굴거리고 싶은데. 소파에 누워 머리를 아래로 향하곤 등받이에 다리를 올린다. 앞머리가 휙 뒤집혀 이마가 선선하니 시원했다.

 "후유엔-. 자세."
 "주말인걸요···."

 구부정하고 흐물거리는 자세로 앉거나 설 때마다 간간히 들려오는 잔소리가 있다. 이제 와선 사라지면 허전하게 느껴질 말들. 몇 년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철이 덜 든 모양이다. 혹은 당신이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거나. 아마도 양쪽 모두겠지.
 배시시 웃으며 대꾸하니 당신이 손끝을 구불거리며 다가온다. 허리와 배를 간지럽히는 손에 자지러지듯 웃다가 결국 소파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뒤집힌 티셔츠를 가다듬고 팔을 내밀면 당신이 자연스레 잡아 일으킨다. 여전히 그렇게나 가벼운 건지, 당신이 이전보다 힘이 붙은 건가.

 "괜찮아?"
 "흐, 큼··· 그럼요···. 앉으실 건가요?"
 "그럴까? 오늘은 거실에서 영화나 보는 걸로~."

 익숙하게 당신의 무릎에 앉으면 허리에 팔이 둘러진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고개를 뒤로 젖혀 편안하게 기댔다. 이젠 당신이나 나나 그리 불편하지도 않은 듯 알아서 자세를 잡는다. 그 상태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주엔 놀러 갈까요, 단풍이 지기 전에 한 번은 가면 좋을 텐데. 해외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 영국은 어때요? 영국은 왜? 큰 이유는 없는데···. 그냥요, 비 오는 풍경이 멋질 것 같아서. 그럼 영국도 생각해볼까······. 이어지던 대화 끝에 잠깐의 침묵이 찾아온다.  

 "···후유엔."
 "네?"
 "어제 네가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기억나?"
 "···네, 기억나요."

 예상치 못한 말에 목소리가 조금 튀었다. 당신의 손등 위를 손끝으로 간지럽히며 조용히 몸을 기댄다. 무슨 말을 하려나, 어떤 기분이었으려나? 그러고보니 곧장 잠에 들어 당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졌다. 예전이라면 당신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웠을 텐데, 이젠 상처받지 않으리란 확신이 아주 조금은 생겼나보다.

 "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는 외롭지 않아. 네가 오리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워."

 귓가로 조곤조곤 들려오는 말들에 벌어져 있던 입술이 굳게 다물린다. 손등을 만지작거리던 행동도 멈추고, 숨도 참은 채 조용히 당신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네가 있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내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오늘은 네게 뭘 먹일까야.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다. 당신이 제 어깨에 이마를 대며 웃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어쩐지 듣는 나는 울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요즘 행복해, 후유엔."

 그 말이 좋아서, 기뻐서. 늘 당신에게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가을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창밖으로 거리의 소음이 들려 오는 날에, 이렇게 맑은 날에. 당신이 나를 안은 채 행복을 속삭여주고 있다는 게, 꼭 꿈만 같이 느껴진다.

 "너는 행복해?"

 뒤이어 들려오는 물음에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앞으로 조금 숙인 채 잠시 대답이 없다가, 허리 위의 팔을 걷어내며 몸을 돌린다. 등을 보인 채로 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당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지 궁금했다. 당신은 거부하지 않고 제 몸을 새로 안아주었다.
 시선이 마주치면 어째서인지 코끝이 시큰해진다. 어느새 당신만큼 따뜻해진 체온으로 하얀 뺨을 감싸 매만졌다. 날이 오똑하게 선 코를, 검은 눈동자를, 눈꺼풀 위의 점 하나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네, 행복해요. 늘···, 더없이요."

 마른 입술로 당신의 이마 위를 누른다. 당신에게선 나와 같은 향기가 난다.

 "형이 여기 있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방문을 여는 게 무섭지 않아서요. 해가 지고 밤이 깊어서까지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잠에 들기 전엔 늘 내일을 기대해요. 요즘은··· 그래요. 어쩐지, 내일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행복해요."

 입술 대신 이마를 댔다. 당신의 입이 다물리고, 그 끝이 떨리는 것을 본다.

 "그러니 제 걱정도 마세요."

 늘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들. 당신이 그러했듯 가슴 언저리에 놓아두고 있었던 말들. 당신과 나의 안녕을 바라는 바람과 행복에 겨운 말끝엔 애정이 담긴다. 바야흐로 삶과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이다. 

 바람이 부는, 외롭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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