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AU - 칼릭스토

※ 살해 & 신성모독

 


 

 

그 다리 아래에는 뱀이 살고 있어.
붉은 비늘, 새까만 혀, 백옥같은 눈동자와 아름다운 숨소리를 가진

 






 "그런 소문이 있어요? 이것 참, 당신이 나를 처음 보고 무서워한 이유가 있었네."


 붉은 머리의 남자가 웃었다. 부드럽게 휘는 눈매 끝에 가로등의 조명이 얼핏 걸렸다. 
 여자 앞에는 오늘 처음 만난 남자가 다리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짧은 만남, 피곤에 지친 하루의 끝에서 만난 그 사람은 화려한 외모와 수려한 언변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세 시간 정도가 지났던가? 슬슬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니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어쩐지 이 대화가 즐거워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소문을 퍼트린 건 누구였을까? 적어도 소문의 주인공이 이 남자는 아니었겠지. 하필 붉은 머리라니 안타깝네요. 이 다리로는 지나다니지 말아요. 그런 말에 남자는 소리 내 웃었다. 유쾌하게 웃는 모습에 심장 어귀가 간질거렸다. 


 "당신은 악마인가요?"
 "악마를 본 적이 있어요? 아니면, 당신은 악마에게 끌리는 사람인가?"
 "나는 신을 믿어요."
 "그렇다면 응답해주시겠죠. 만약 내가 악마라면요."
 "기분 나쁘지 않은가요? 대뜸 악마라고 말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거든."


 그래? 그렇구나. 여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앉았던 몸을 일으키고 시선을 맞추자 백색 눈동자 위로 강가의 불빛이 일렁였다. 참 깊고 맑네. 그렇게 중얼거리자 그는 앞머리를 가다듬으며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자는 야경을 바라보고 섰다. 남자는 그 뒤에 서 부드럽게 여자를 품에 안았다. 그 온기. 분명히 느껴져야 할 온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차디찬 냉기만이 남아 있었다. 당신, 추워요? 여자는 물었다. 남자는 느슨히 웃으며 여자의 어깨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하나, 둘,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듯 섬세하고 조용히, 아주 느린 템포로. 여자는 간지러워 웃었다. 귓가에 슷... 하는 숨소리가 짧게 울린 듯했다.


 "칼릭스토?"
 "악마라고 말할 만큼, 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죠."
 "그건…. 부정하지 않을게요."
 "기쁜데…. 나도 같거든요.


 여자는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는 손과 품을 물려주지 않았다.


 "어떤가요. 나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가요?"
 "그래요."


 남자는 웃었다. 귓가에 사랑의 말을 속삭였다. 당신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역시, 함께 있으면 시간이 멈추고 영영 함께 있고자 바라게 되는 게 아닐까요. 나와 그러고 싶은가? 어쩌면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나를 위해 죽어줄 수도 있나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나를 위해 죽으면 당신은 무척이나 행복하지 않겠어요? 칼릭스토? 


 "대답해봐요. 당신은 죽어선 안 될 사람인가요?"
 "나는…."
 "내게…, 속하고 싶지 않은가요?"


 눈이 마주쳤다. 백색의 눈, 아니. 붉은 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살짝 벌어진 입 안으로 검은 혀와 솟은 송곳니가 보였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멈췄다. 저 멀리 도로에서 들려오던 자동차의 엔진음, 사람들의 소음. 귓가에 스치는 붉은 뱀의 숨소리. 뛰는 심장의 박동만이 머리를 시끄럽게 울린다. 어깨에 닿은 손길만히 홧홧하게 불타오른다.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천천히, 어쩌면 격정적으로 끄덕였다. 이 순간에 찾아온 구원이 달콤했다. 나에게만 찾아온 이 환희, 나의 헌신적이었던 삶에 보답하는 환희! 영원히 흐르는 피가 되어 아름다운 남자의 피부 아래서 살아갈 미래. 영영 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소설 속의 연인처럼, 안타깝고 아름다우며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할 사랑.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이곳은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다리 위 가로등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흐린 눈으로 뒤를 돌면 붉은 남자가 섬뜩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저 미소 위로 입 맞추고 싶어.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영영 그의 일부가 되었으면. 속삭임에 응답하듯 그는 자신의 허리를 안아왔다. 역시 당신도 나를 사랑하는 거죠?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이 섞이고 피비린내가 났다. 혀가 뭉개져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신의 뺨을 만질 수는 있어. 더듬는 손끝의 감각이 어느새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당신을 바라볼 수는 있어. 어째서 붉은 머리카락 말고는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대답해줘요, 칼릭스토. 나의 바람에 늘 응하는 당신은 더욱 꽉 나를 안아주었다. 온몸에서 피가 빠지는 듯한 탈력감이 들었다. 행복해서 그런가 봐. 등허리를 타고 오르는 거친 쾌감이 생각을 어지럽혔다. 아아, 사랑해요. 나는 이제 영원히 당신과 함께 있나요?


 "그럼요. 축하해요."


 칼릭스토는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입꼬리에 맺힌 피를 손끝으로 닦아내며 목을 울렸다. 품 안에 늘어진 여자는 황홀한 사랑에 빠져 붉은 남자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짧은 입맞춤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다리 아래로 사랑을 내던졌다.

 철퍽.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밤의 강가에는 무엇도 흐르지 않았다. 물길을 타고 오르는 뱀 한 마리가 비늘을 씻어내고 있을 뿐이다. 정말 아름다워. 왜 그런 소문이 생겼는지 알겠다니까.


 칼릭스토는 철 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가로등이 깜빡, 깜빡. 그의 머리 위를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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